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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컬럼 - 김동석의 미국보기  
작성자 김동석
작성일 01-01-2010
ㆍ추천: 0  ㆍ조회: 9081    
“의료보험개혁 ”, 힐러리의 실패를 딛고서
라움 임매뉴엘의 밀어붙이기.

1992년, 백악관을 차지한 빌과 힐러리의 가장 깊은 속내는 의료보험 개혁이었다. 1940년대에 시작된 사회보장과 의료보장은 시민사회 내 사각지대를 돌보기 위한 것이었지만 클린턴 부부의 계획은 그러한 제도의 수정과 보완이 아니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별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는 체제를 전부 해체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빌과 힐러리는 지난 12년 동안(레이건 연임과 아버지 부시) 하염없이 우측으로 쏠려있는 공화당 정책을 바로 잡기위한 한방의 펀치가 바로 의료보장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1991년 대통령선거전이 본격화 되면서부터 빌은 백악관에서 영부인이 맡게 될 역할이 의료보장개혁이라고 수차례 언급했다. 대통령에 취임하자 빌은 의료보장 제도를 뜯어고칠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그 책임자로 힐러리를 지명했다.

특별전담기구는 여섯 명의 장관과 일단의 백악관 고위 보좌관으로 구성 되었다. 이들은 모두 힐러리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영부인으로서는 유례가 없는 정책 결정의 지위를 부여 받았다. 백악관의 서열이 빌-힐러리-고어의 순으로 정해졌다. < 일부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고어와 힐러리의 차기경쟁 구도로 풀이하기도 했다 >

특별전담기구의 핵심인사들에게 힐러리는 자신과 빌이 아칸소에서 교육계의 기득권을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교육개혁에 성공했다는 것을 습관처럼 강조했다. 그녀는 상황실을 만들고 제약회사, 의료보험회사, 비양심적으로 폭리를 취하는 의사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연설을 하면서 의료계의 기득권과 전쟁을 선포했다.

힐러리는 반대 의견에 부딪히면 완고한 확신으로 맞섰다. 힐러리의 이러한 강력한 공격은 의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의료계의 공격적인 로비에 부딪히자 힐러리는 전담기구 구성원의 신원을 비밀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힐러리의 이러한 주장은 언론과 의회지도부 그리고 의료계를 분노시켰다.

의료보장 개혁에 있어서 빌과 힐러리의 가장 큰 실수는 의회를 무시한 처사였다. 힐러리는 의료보장제도를 손보기 전에 복지제도의 문제점부터 고치라는 모이니한(Daniel Patrick Moynihan: 당시 뉴욕출신 상원의원)과 미키 캔터(Mickey Kantor; 상무장관. 무역대표부대표) 등 다른 경험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무시했다.

워싱턴에서 가장 깊은 식견을 가진 입법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 그래서 상원중의 상원이라고 불리는 상원금융위원회 의장인 패트릭 모이니한(아이러니하게도 모이니한의원은 2000년에 자신의 상원직을 힐러리에게 물려주었다)은 힐러리를 향해서 “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야심찬 개혁 법안을 추진하려면 당파를 넘어선 폭넓은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고 조언했지만 그의 충고를 배제시켰다.

모이니한 상원의원은 클린턴 부부가 공약을 정권인수위원회의 창밖으로 내던져 버렸다고 비난 했으며 클린턴 부부와 수석 보좌관들은 당선 후부터 취임 때까지 그의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백악관에서 빌과 힐러리의 중간연결 핵심 보좌관인 람 이마뉴엘(Rahm Emanuel: 현재 백악관 비서실장)은 <타임>의 마이클 크레이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 모이니한 의원의 뚱딴지같은 소리에 개의치 않습니다. 그와는 끊어진 관계입니다. 그는 거물이기 때문에 다루기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가 우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우리는 그를 깔아뭉개고 지나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타임>의 인터뷰 기사가 익명으로 나가자 전국이 들끓었다. 백악관은 그에 대응하느라 전전긍긍했다. 클린턴이 모이니한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그가 누군지 잡으면 잘라 버리겠다고 사과했다. 기사가 나가고 난지 3년6개월이 지나서야 크레이머 기자는 모이니한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그가 바로 ’라움 이마뉴엘‘이라고 알려 주었다. 결국, 힐러리와 이마뉴엘의 막무가내 밀어붙이기 식의 의료보장제도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그 실패의 여파로 1994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완패를 했고 클린턴은 대통령으로서 리더십을 상실하고 탄핵에 시달리게 되었다.

빌과 힐러리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의료보장제도 개혁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2008년 힐러리의 대권의지가 그것을 입증해 주기도 했다.

의료보장 개혁이 실패한지 만 15년이 흘렀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의료개혁에 다시 도전장을 냈다. 모이니한 의원을 내동댕이쳤던 장본인 라움 이마뉴엘이 다시 등장했다. 괴팍한 공격수, 이마뉴엘이 이번엔 참모가 아니고 사령관으로 개혁의 키를 쥐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비서실장 자격이다. 그는 15년 전의 과오와 실수가 있기 때문에 기필코 성공한다고 의회로 출근을 할 정도다.

클린턴 이후 이매뉴엘은 의회 내 거점을 만들기 위해서 본인이 직접 의원이 되었다(2002년). 그는 2006년 선거에서 낸시 펠로시를 앞장세워 민주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내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08년 대선전에서 유태계를 오바마 지지로 끌어내는 데에 성공해서 비서실장이 되었다. 대통령 이상으로 의료보장제도를 개혁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반대하는 의원들을 전화로 호출해서 대통령과 연결해서 40여명을 찬성하도록 했다. 공화당의원 한명을 끌어내면 절반의 찬성과 같은 성과라고 베트남계의 초선의원인 조셉 카오 (Joseph Cao)의원을 대통령과 전화로 연결해서 찬성표를 던지도록 했다. 2009년 11월7일 토요일, 의료보험개혁안이 하원전체회의에서 통과 되었다. 이제부터 상원이다. 이마뉴엘도 ‘상원’은 두렵다고 했다. 천하의 이마뉴엘, 그의 상원 전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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