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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범의 이민소설 '접목'  
작성일 16-07-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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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목 IV-3
현정은 익수의 침대에 같이 걸터 앉은 채 얼굴을 정색하고 물어 왔다.

이미 그녀의 얼굴에 웃음도 그리고 오랫만에 만났다는 반가움에서 오는 아련함도 그리고 습기어린 모습도 없었다.

정색을 하고 익수앞에 다가서는 현정을 보고 익수는 가슴 한 쪽이 저려 왔다.

4년이 지나도 여전한 그녀, 현정

현정이 저런 모습을 할 때는 이제부터 어김 없이 무심했던 익수의 모습에 대해 따져들 때였다.

그런 현정을 바라보며 익수는 변하지 않는 나무처럼 푸르게 서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현정은 익수에게 따지둣 물어왔다.

"그런데 어쩜 오빠는 그럴 수가 있어? 우리 집전화번호를 몰라? 아님 내가 사는 집을 몰라?"

그녀의 얼굴에는 그녀가 배앝아 내는 단어의 뜻에 따라 얼굴의 분위기가 변해가는 묘한 데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정의 얼굴은 어느새 서리발이 풀풀거리고 있었다.

이제 5분쯤은 계속 되리라.

그것도 제지하고 나서거나 만족할만 변명이 있어야만 가능하리라.

그녀가 이렇게 따지고 들었을 때 5분 전에 그녀의 말을 막거나 또는 5분 후에도 그녀에게 적당한 변명을 하지 않으면 그 뒤는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5분 전에 그녀의 말을 막을 경우 그녀의 따지는 듯한 말투는 점점 더 에스컬리에트 되곤 하였다.

5분 후에도 그녀에게 적당한 변명을 하지 않으면 그녀는 더욱 화를 내다간 결국 아주 긴 침묵속으로 들어가버리리라.

익수는 그런 에스컬레이트 되는 감정도 길어져버리는 침묵도 견디지 못해 했다.

계속 되는 그녀의 힐난은 결국 4년여가 되는 지금까지 그녀에게 연락 한 번 안한 익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어투가 원망조로 바뀔 때 그 때가 그녀의 말을 끊어낼 적기였다.

익수는 어느새 4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현정의 분위기에 고스란히 말려들어 언제 그녀에게 변명을 할 적기인가를 살피는 자신의 모습을 보곤 이내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지금 이런 변명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미 난 저만큼 와버린 것을.......'

익수는 이미 4년 전의 익수가 아니었다.

맑은 영혼을 소유했던, 지칠줄 모르고 정의를 쫒았던 그런 익수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라고 익수는 생각했다.

익수가 실소를 흘리자 믿을 수 없게도 현정은 말을 멈추고 눈이 동그래져서 익수를 바라보았다.

"왜? 오빠? 왜 웃어?"

여자란 그렇게 민감한 것인가?

아니 어쩌면 현정은 익수의 달라진 모습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4년 전 익수의 마지막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그리고 4년만에 나타난 익수를 그 뒤의 필름에다 이어버린 꼴이었다.

전혀 변명하지 않는, 아니 변명할 시점을 정확히 알고 언제나 변명조의 말을 하던 익수가 실소로 대신 하는 것에서 여자의 민감함이 익수가 달라져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너는 그렇게 안달라졌니? 그대로구나......."

익수가 말하자 현정은 안심이 된다는 듯 얼굴이 이내 밝아졌다.

"달라져야 될 이유가 없는 걸 뭐......."

달라져야 할 이유, 세월은, 세상은 그녀만을 비껴가는 것일까?

그랬다. 그 처참하고도 치열했던 70년대 말과 80년도도 그녀는 아웃 사이더였다.

단지 그녀는  ê·¸ 시대와 익수라는 끈으로 ì—°ê²° 되어 있었을 뿐이다.

익수라는 끈이 사라지면 그녀에게 그 곳으로 향하던 하나의 통로가 사라질 뿐, 사라져도 불편하지 않을 세상이 그녀에게는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었다.

단지 익수라는 구체적인 존재가 그녀의 눈에서 사라져 그리움이라는 가슴앓이가 될 뿐.......

그래서 그녀의 세상은 단절 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단절  ë˜ì§€ 않은 세상에 있었던 그녀가 아직도 4년전인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리라.......

단절되지 않았던 세상에 살고 있었던 그녀와는 달리 익수는 80년을 기점으로 심하게 단절 되어 버렸다.

익수에게는 유배된 4년 이었고 그녀는 유배되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익수에게 4년의 유배는 단지 육신의 유배였을 뿐 아니라 정신과 의식의 총체적인 유배였고 단절이었다.

그 단절의 틈새를 건너 뛰어서 그녀, 현정이 익수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연속된 세상에서 살아온 현정과 단절된 세상에서 말라버린 틈새를 품은 익수가 4년을 격하고 마주 대하게 된 것이다.



"달라질 이유가 없다....... 그래 넌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지......"

익수가 자조어린 목소리 말하자 현정의 얼굴이 흠칫 굳어졌다.

"뭐가 다른 세상이야, 같은 하늘 밑, 같은 땅위인데....... 같은 공기로 숨을 쉬는데......"

현정은 피해가고자 했다.

그러나 피해가고자 하는 현정의 마음을 신경 쓸만큼 익수의 마음은 여유롭지 못했다.

"아니지....... 다른 세상이지, 너는 여전히 아름답고 너에게 속해 있는 세상은 밝고 부유하지, 난 이제 변혁의 대오속에서도,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일상 속에도 속하지 않은 부랑자이고....... 너가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은 같지 않아....... 달라 , 다르고 말고......."

익수는 혼자말을 하듯이 중얼 거렸다.

문득 침묵이 흘렀다.

익수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í˜„정의 얼굴은 멀어진 의식 속에 흐릿하게 멀어져 있었다.

그러한 침묵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현정의 입에서 바람이 새듯 빠져나온 흐느낌 소리에 익수는 흠칫 의식을 되돌려 세웠다.

현정의 눈에서는 눈물이 넘쳐 나와 현정의 얼굴에까지 흐르고 있었다.

참았던 흐느낌이었던가?

흐느낌이 새어 나오자 현정은 그 흐느낌 속에 단어들을 섞어 넣기 시작했다.

"그래 달라....... 오빤 외계인이고, 난 지하인이야....... 그래 우리가 달라서 오빠는 좋을 게 뭐가 있어. ....... 왜 4ë…„ 만에 만나서 또 ë‚´ 가슴에 못을 ë°•ì–´.......ë‚´ê°€ 부유속에 사는 것이 ë‚´ 탓이야?...... 오빠가 ê·¸ 운동 속에 뛰어들어 오빠가 4ë…„ 동안이나 연락이 없었던 것이 내탓이야?  ì˜¤ë¹ ê°€ ë­˜ 알아?....... 오빠가 4ë…„ 동안내가 ì–´ì°Œ 살았는지 어떻게 알아......"

흐느낌 속에 현정의 단어들이 떨리듯 새어나와 익수의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결코 익수가 원하지 않았던 상황으로 흘러가버리고 있었다.

'이렇게 된 것 여기서 마음을 모질게 먹자...... 그래서 오늘 이렇게 우연히 만난 것조차 지워버리자. 그녀와 나는 4년전에 헤어졌던 거야...... 모질어지자...... 익수 넌 현정이와 어울리지 않을 뿐 더러 너가 어찌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어......'

익수는 마음속으로 차라리.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고 있었다.

익수도 현정을 보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단지 온 시간이 온 공간이 그녀로 가득해서 그녀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기에는 익수의 유배는 너무 힘이 들었다. 아주 피곤할 때. 너무 피곤해서 몸둥아리가 한없이 땅밑으로 꺼져 들어가는 듯 했을 때, 그 때마다 문득 아주 먼 어둠속에서 불빛이 떠오르듯 현정의 얼굴이 생각나곤 했었다. 그런 때마다 현정은 그리움이었다.

여기서 떨어버리자라고 마음을 먹기에는 익수는 그렇게 모질지 못했다.

"현정아, 미안....... 난 그런 뜻이 아니고......."라고 말하며 익수는 현정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둘러 안아갔다.

그러나 현정은 모질게 익수의 손을 뿌리쳐 버렸다.

"그런 뜻이 아니면....? 오빠가 뭘 알아? 내가 오빠 때문에 얼마나 가슴에 멍이 들었는지, 내가 오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오빠가 어떻게 알아? 그래 오빠의 세상과 내 세상은 달라. 하지만 오빠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 세상이 부유하고 그렇게 밝은 세상인 것만은 아냐. 그것은 내 겉의 세상일 뿐이야. 내 세상은 오빠야. 오빤 4년 동안 한번도 나를 찾지 않았어. 오빠의 세상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지. 하지만 난 달라. 내 세상은 오빠야. 그 세상이 나에게 없는 세월이 어떤 것인지 오빠가 알기는 알아?"

익수의 손을 뿌리친 현정은 그렇게 울부짖듯이 한 자 한 자 또박 또박 말하고는 문을 열고 뛰어 나가버렸다. 그녀의 발자욱 소리를 따라 흐느낌이 긴 여운을 남기고 사라져갔다.

남겨진 익수는 침대에 걸터 앉은 채 멍하게 현정이 사라진 문을 바라 보았다.

현정은 또 다른 세상으로 문을 열고 나가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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