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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범의 이민소설 '접목'  
작성일 23-08-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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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목IV-4
현정이 그렇게 나가버리자 익수는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출구를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그어져버린 ì„  밖에서 가물거리던 세상이 현정의 등장으로 다시 ê·¸ 선을 넘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이미 마음 밖으로 밀어내버린 그런 기억들을 다시 맞이하기에  ìµìˆ˜ëŠ” 자신이 너무 황폐해져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ê·¸ë“¤ì´ 다시 나를 그들 속으로 가두어 놓는다다면.......

익수는 정말 자신이 없었다. 빛나던 말도 눈빛도, 의기롭던 생각도 그리고 순수하기만 하던 육신도 이제 이미 자신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라고 익수는 생각했다.

익수는 서둘러 환자복을  ë²—ê³  자신의 옷을 걸쳤다. 그러나 어디에고 신발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익수는 환자용 슬러퍼를 신은채 병원을 빠져 나왔다.

문득 자신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 현정이 얼마나 절망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익수는 굳이 외면하고자 하였다. 외면하는 길만이 그녀를 위하는 길이라고 익수는 생각했다.

어둑해지는 팔달로의 뒷편길을 걸어 도청 쪽으로 향했다. 도청 앞 광장을 지나오면서 뒤따라 오는 저 80년 봄의 함성이 익수의 귓전을 때렸다.

익수는 허겁지겁 그 함성으로부터 도망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상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익수를 보자 상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상수에게 익수는 손을 내저었다.

그리곤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주가 먹고 싶어"

상수는 익수의 소리를 듣고 다른 때와는 달리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장지문을 열고 나가는 상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익수는 왠지 코끝이 찡해져 왔다.

이쪽 세상에서 유일하다 싶이 남은 상수.......

상수가 그의 옆에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런 상수가 이제 조금 있으면 그의 곁을 떠날 것이다.

그런 생각만으로 문득 익수는 방안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문득 뎅그라하니 자기 혼자 남겨진다는 것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가슴 밑바닥으로 바람이 큰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을 들었다.



상수가 문을 열고 소주와 쥐포를 끄집어 내놨다.

유리 컵에 넘치도록 소주를 따라 익수는 들이켰다.

상수가 쥐포를 뜯어 익수에게 내밀었다.

쥐포가 질겅 질겅 익수의 입안에서 목을 넘어갈 때까지 상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익수는 자신이 그 경황중에도 잊지않고 가져온 상수가 부탁한 물건을 내밀었다.

물건을 받아들면서도 상수는 아무말이 없었다.

비어진 유리컵에 상수는 또 소주를 가득 채웠다.

큰 유리컵으로 두잔이 나오는 2홉들이 소주는 빈병이 되어 옆으로 뒹굴었다.



"데모데를 만났어."라고 익수가 말했다.

상수는 그래서?라는 눈빛으로 익수를 건네 보았다.

"그 한가운데서 난 꼼짝도 할 수 없었어. 구호들이 터지고 돌과 최루탄이 내머리위로 날아다녀도 도망가야 한다는 것은 내 마음일 뿐, 난 꼼짝도 할 수 없었어."

상수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데모데 속으로 향하려는 내 발자국을 잡아두려고 난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어. 순결한 영혼들 속으로 난 돌아가면 안되는 인간이야."

익수는 가슴으로붙처 차오던 습기가 눈을 넘쳐 볼로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익수가 그 70년대 말과 유신과 그리고 그 참혹한 80년의 봄, 그리고 도망자처럼 도망가다 잡혀 군대로 갔던 이야기 들을 줄줄이, 자신에게 되새기듯 그렇게 상수에게 이야기를 할 때도 상수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무서웠어.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내가....... 구호를 외치며 화염병과 짱돌을 던지는 무리들도, 그리고 그들에게 최루탄을 쏘아대는 전경들도...... 그리고 구경조차 차마 무서워 도망가버린 군중들 속에도 내가 서있을 곳이 없었어....... 그래서 더욱 무서웠어."

익수는 고개를 무릎에 묻고 울기 시작했다.

그런 익수를 상수는 물끄러미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익수의 울음이 잦아들자 문득 상수가 툭하니 말을 던졌다.

"이제 이 곳에 네자리가 없다면 떠나. 나랑 같이 미국으로 가자."

익수는 흠칫 놀란듯 고개를 들었다.

상수와 익수의 눈이 마주쳤다.

"그 곳은 싫어, 그 곳에 가서 무얼하게."

익수가 독백처럼 내뱉었다.

"돈을 버는거야, 난 돈을 벌겠어, 너도 돈을 벌면 돼."

상수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돈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지마. 돈 때문에 당한 설움을 넌 몰라. 돈 때문에 사람이 죽고 돈 때문에 인간 답지 못하게 개처럼 사는거야."

"난 우리 아부지가 돈때문에 죽었어. ë‚´ 고교때 빚쟁이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목을 메었지. 아버지는 그렇게 도망가버린 거야. 남겨진 가족들은 집도 빼앗긴 채 길거리로 나 앉았지.  ìš°ë¦° 그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흩어졌어. 어머니는 식당으로 나는 공사판으로 그리고 ë‚´ 여동생은 친척 집으로......"

익수는 놀랜 눈으로 상수를 바라보았다. 그 동안 난익수는 상수의 주변에 대해 단한번도 들은적도 물은 적도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난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갈거야."

"너도 네 이상과 뜻이 있다면 그들속으로 들어가. 넌 도망 다니는거야. 잘은 모르지만 학생운동만이 다가 아니야...... 너가 하겠다는 뜻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공장 같은데로 가...... 거기서부터 시작해. 도망다니지말고."

상수의 말에 익수는 점점 더 굳어져가는 몸둥아리에 이어 의식의 경직도 느꼈다.

상수의 말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것만 같았다.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네 모습은 비겁한거야. 맞설 용기가 없다면 차라리 나랑 같이 미국으로 가."

상수가 직격탄을 날렸다.

익수는 허겁지겁 소주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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