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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흑인 공민권 운동은 수렁에 빠져있는 미국(인종차별이 성행하는 미개한 국가)을 건져 올린 (살려낸) 운동이다. 흑인들이 똘똘 뭉쳐서 미국의 시민사회를 미국답게 만들어 냈다. 그들은 색깔이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성경말씀을 토대로 운동에 참여했다. 이 운동을 시작한 선각자들은 목숨까지 내 놓는 용기를 보였다. 미국의 지나간 역사를 들추어 볼수록 1960년대의 민권운동은 그야말로 미국을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낸 운동이란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당시 운동을 일으키고 이끌었던 흑인 기독교인들은 공민권의 가장 핵심인 투표권까지 쟁취했다. 투표권이 생기면 얼굴색과 관계없이 정치적인 평등이 이루어질 것 같았다. 흑인에게도 투표권이 허용되고 3, 4년이 흘렀다. 목숨을 내놓고 얻어낸 투표권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흑인 자신들의 참여(투표율)가 저조하기만 했다. 민권운동 지도부는 내친김에 흑인 정치인을 배출하는 전략적 실천에 돌입했다. “자원봉사자”와 “모금”이었다. 흑인인구가 20%가 넘는 대도시 밀집지역엔 반드시 (흑인)후보를 낸다. 선거가 임박한 5개월 동안은 “수입의 10% 기부운동”을 벌렸다. 뉴욕과 시카고, 그리고 조지아 아틀란타에서 기금이 쌓이기 시작했다. 돈으로 백인 운동원들을 모았고 백인 운동원들이 전면에 나서서 선거운동을 하도록 했다. 그때의 성공이 아직까지 도시권 거물 흑인정치인들을 보장하고 있는 일이다. 정치인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평등 권리에 기초한 전략적 참여였다. 다수인 백인들이 앞장서서 흑인후보를 선전하도록 했던 것이다. 마지막 성공적인 결론의 핵심은 바로 “돈(모금)”이었다. 결국에 자본논리에 입각했던 것이다. 당시 흑인 지도자들은 지금도 “ 50년 전 우리의 형제들은 빵 대신에 표를 선택했다 ”라고 정직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미국의 선거역사 속에서 모금액수와 당선의 함수관계가 엇갈린 적은 단 한번 도 없었다. 워싱턴의 돈정치를 몰아내겠다고 K스트릿(로비타운)에 무서운 경고를 내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도 사실은 돈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다만, 그가 소액다수의 모금으로 천문학적인 액수를 모금했기 때문에 Grass Root(시민풀뿌리)정치라고 하지만 역시 작동방식은 ‘자본논리’였다. 선거운동 웹사이트에 모금계좌를 만들어 놓고서 ‘지지의 표시는 소액달러입니다 ’라고 모금을 했다. 전국으로 모금운동이 확산되었고 심지어는 타국으로부터도 돈이 들어왔다. 공중파는 물론이고 지역 케이블까지도 전세를 내다시피 했다. 경선에서 힐러리도 본선전의 맥케인도 오바마의 자금력엔 맥을 추지 못했다. 지지도가 하락할 기미가 보이면 웹사이트에 돈이 들어오도록 캠페인은 완벽하게 모금에 초점을 맞추었다. 돈만큼 표가 나왔고 그래서 최초의 흑인대통령의 역사를 쓰게 되었다. 오바마 선거전이 아니더라도, 2000년도 앨 고어와 조지 부시후보가, 2004년 존 케리와 부시의 선거전이 정확하게 선거자금액수에 의해서 승자가 결정 되었다. 지역선거는 더욱더 “돈‘에 의존한다. 세계의 시장이라고 소문난 줄리어니는 물론이고 스캔들로 날아간 엘리옷 스피쳐 뉴욕주지사도 엄청난 선거자금을 모았었다. 불룸버그 뉴욕시장은 민주. 공화 양당의 울타리를 넘나들며 돈으로 지지 세력을 모아서 시장자리를 꿰찼다. 아직까지 선거판에 쓸 돈이 풍부한 불룸버그는 돈을 믿으면서 년임 제한을 철폐하고 3선의 선거를 치루고 있다. 올해 선거를 치루는 존 코자인 뉴저지 주지사는 골드만 삭스에서 떼돈을 벌어서 미국 의원선거사상 가장 많은 돈을 퍼부어서 상원이 되었고 2005년엔 역시 거액을 아낌없이 내놓고서 뉴저지 주지사 자리에 올랐다. 뉴욕의 후러싱 선거도 다를 바가 없다. 2001년 시의원 선거전에서 중국계 ’존 루‘와 한국계 P씨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듯 했지만 선거자금액수를 갖고서 전문가들은 뚜껑이 열리기전에 이미 결론을 냈었다. 당시 한인후보를 에워싼 뉴욕지역 한인사회는 후보의 자질을 놓고서 갑론을박으로 목소리가 요란하기론 기록을 세웠지만 동포사회 내 모금액수(real money: 후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는 목소리와 반비례 했었다. 뉴욕의 한인동포사회가 사상 최초로 한인시의원을 탄생시킬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꼭 20일이 남았다. 그러나 선거가 전문인 필자에게는 오히려 요즘이 가장 불안한 기간이다. 당내경선에선 실력을 발휘했지만 도무지 본선거전을 앞두고 모금실적이 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거물들의 지지를 받아내면 대세론이 확산되고, 대세론에 의해서 커뮤니티가 모금에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 공식 같은 관례인데 한인커뮤니티에 모금바람이 일지 않는 일은 웬일일까...? 그는 이미 민주당 후보이고 거의 모든 지역의 정치대장들로부터 공개적인 지지를 받았다. 앞으로 열흘간 문제의 핵심은 “돈”이다. 동포사회 내 소액다수의 모금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파악하고 지도자들이 빨리 들고 나서야 할 일이다. ‘케빈 김’의 선거에는 우선 한인사회 내 시민권자나 유권자가 아닌 부분에서 가장 절박하게 앞장서야 자연스런 현상이다. 마치 남미계 후보가 나서면 남미계 서류 미비자들이 누구보다도 가장 앞장서는 것을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것처럼. 시민이 아니라고 당하는 차별에 가장 먼저 하소연할 대상자는 시의원이다. 지난 만 8년 동안 우리가 존 루 의원에게 애절하게 하소연했던 차별케이스가 어디 한두 번이었는가? 그 다음은 뉴욕의 소상인들이 무섭게 나서야 할 일이다. 한인커뮤니티의 자영업 주들에게 뉴욕시의원은 가장 가까운 해결사이다. 한인자영업자들이 지난 만 8년 동안 중국계 시의원인 존 루씨를 찾아다녔던 일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일이다. 그리고 그 많은 한인교회들이다. 교회와 지역사회의 분쟁이 있을 때 마다 ‘존 루’를 찾았던 일을 생각해 보자. 뉴욕시 시의원의 역할과 한인 커뮤니티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지금 ‘케빈 김’ 선거에 대한 한인사회의 반응은 정말로 너무나 조용하다. 왜 ‘케빈 김’ 선거를 위한 모금활동이 이렇게도 저조한지 모를 일이다. 지금, 남은 열흘은 가장 정확한 선거운동 기간이다. 운동원들이 ‘케빈 김’을 찍어 달라고 가가호호 방문해야 할 기간이다. 문제는 돈이다. 돈으로 사람을 써서 가가호호 방문시켜야 표를 셀 수가 있는 일이다. 천 달러나, 백 달러가 아니라도 1, 20달러라도 지금 정확하게 케빈 김 캠프에 보내는 일이다. 당선 후에 이것을 공개한다면 참여한 사람들은 얼마나 보람이겠는가...? 이번 11월3일 ‘케빈 김’의 선거는 한인들에겐 다시는 올 수 없는 기회이다. 지금처럼 소수계의 선출직 진출 바람이 강했던 적이 없었으며 더구나 뉴욕도시권에선 “아시안 정치인이 잘 한다”란 분위기가 팽배되어 있기도 하다. 한인들 전체가 자기일 같이 나서야만 하는 이유는 그가 어디로 보나 한인사회를 대표하고 한인커뮤니티를 위하는 정치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인밀집지역에서 한인들의 결집을 바탕으로 민주당의 후보를 쟁취했다. 더구나 그는 한국어가 유창한 한인커뮤니티 출신이다. 그는 자기지역 연방정치인 밑에서 지역정치와 연방정치가 분리되고 결합하는 방식을 경험한 경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한인사회가 맞이한 역사적인 기회를 놓쳐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지나간 버스에 손들었던 경험이 어디 한 두 번 이었는가? 오늘이 가기 전에.... |